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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장악한 칸라이언즈 2026, 진짜 승자는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것들'

2026-08-21 09:23:26
[2026 칸라이언즈]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프랑스 칸서 열려
AI 규정 강화 후 출품작 수 25% 감소, 73년의 권위 지킨 칸라이언즈의 뚝심
전통적 광고의 종말 속 '엔터테인먼트·인게이지먼트·크래프트맨십'의 승리
독립대행사와 젊은 광고인들이 바꾼 대한민국의 크리에이티브 지형
칸라이언즈, '영감' 얻는 곳에서 '글로벌 네트워킹'의 최전선으로
칸라이언즈 2026 현장. ©브랜드브리프
칸라이언즈 2026 현장. ©브랜드브리프

올해로 73회 째를 맞은 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비티 축제 칸라이언즈(The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2026은 혼돈과 이변의 연속이었다.

몇 년 전부터 크리에이티브 업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AI(인공지능)는 올해도 칸라이언즈를 장악했지만, 진짜 승자는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아닌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올해 출품작 수는 크게 줄었지만, 칸라이언즈가 열리는 행사장 인근의 호텔은 빈 방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고 대부분의 식당들은 긴 웨이팅 시간을 감수해야만 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다년간의 수상 노하우를 지닌 국내 대형 종합광고대행사들은 올해 빈 손으로 돌아왔지만, 직원 수 10명, 20명 남짓한 작은 독립대행사들은 빛나는 사자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불러 일으켰을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급속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권위나 명예에 안주하지 않고,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되기로 작심한 듯한 2026 칸라이언즈의 고민과 결심을 톺아보고자 한다. 

칸라이언즈 연간 출품작 수 추이 그래프. ©브랜드브리프
칸라이언즈 연간 출품작 수 추이 그래프. ©브랜드브리프

△ 전체 출품작 수 25% 감소
칸라이언즈는 올해 출품작 수가 전년 대비 25% 감소한 2만50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가 처음 공개됐을 때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세계 최대 규모이자, 최고 권위의 어워드 쇼인 칸라이언즈가 7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그러자 사이먼 쿡(Simon Cook) LIONS CEO(최고경영자)는 예상했다는 듯 "의도했던 바"라고 말하며 출품작 수가 감소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해 칸라이언즈는 AI 조작 논란에 휩싸인 광고 캠페인의 그랑프리를 취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는 단순히 한 캠페인의 수상 취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지켜온 어워드의 권위가 무너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칸라이언즈는 출품작에 대한 자격 요건과 검증 규정을 강화했다. 새로운 규정에 는 사실 확인(fact-checking) 절차 도입, 광고주 승인(client sign-off) 요건 강화, 허위 또는 조작된 작품을 제출한 에이전시에 대한 출품 금지 조치 등이 포함돼 있다. 

까다로운 규정이 추가되자, 많은 에이전시와 브랜드 측은 혼란을 겪었다. 특히 광고주 승인은 브랜드의 이미지와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만큼, 출품 과정의 큰 변수로 작용했다. 이는 고스란히 올해 출품작 수 대폭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이먼 쿡(Simon Cook) LIONS CEO.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사이먼 쿡(Simon Cook) LIONS CEO.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사이먼 쿡 CEO는 이에 대해 "우리가 새로운 어워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지막 관문에서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다"며 "강화된 기준은 크리에이티비티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리에이티비티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혁신적인 작품이 마땅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 인정이 의미 있고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공정성을 지켜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당장은 업계에 혼란과 위축을 가져오더라도, 칸라이언즈가 지켜 온 권위와 공정성을 고수하겠다는 뚝심을 공표한 것이다.

올해 출품 건수는 감소했지만 참가 티켓 판매는 지난해와 비슷한 약 1만3000장을 기록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칸 현지 분위기 역시 출품작 수 감소의 영향을 크게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사장과 세미나, 네트워킹 프로그램마다 참가자들로 붐비며 예년과 같은 열기를 이어갔다.

△ 엔터테인먼트·인게이지먼트·크래프트맨십의 승리 
"요즘 사람들은 광고를 싫어합니다. 돈을 주고서라도 안보려고 하죠. 그렇다면 광고는 이제 끝난걸까요? 아니요. 오히려 더 새로운 영역과 장르로 무궁무진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광고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 기쁘고 설렙니다." 

올해 칸라이언즈 심사위원으로 칸을 찾은 김정아 이노션 대표의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광고의 종말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는 전통적인 광고 문법의 종말일 뿐 오히려 광고는 새롭게 진화하면서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올해 칸라이언즈 수상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통적인 TV 광고 대신, 사람들을 즐기게 만들고 참여하게 만들고 경이로운 장인정신으로 감탄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이 칸의 선택을 받았다. 

컬럼비아 스포츠웨어의 'Expedition Impossible' 캠페인은 올해 칸에서 브랜드 익스피리어스 & 액티베이션(Brand Experience and Activation) 라이언즈 그랑프리와 티타늄을 포함해 가장 많은 9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 캠페인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직접 사진을 찍어 증명 한 사람에게 회사를 통째로 넘겨주겠다는 CEO의 충격적인 약속으로 시작했다.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지평설'을 증명하기 위해 극한의 자연환경을 직접 탐험하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 환경은 컬럼비아 스포츠웨어의 필요 가치를 자연스럽게 드러냈고, 이 캠페인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언드 미디어(Earned Media) 가치 240만 달러 달성, 소셜미디어 조회수 1040만 회 기록, 유튜브 시청 완료율(View-Through Rate, VTR) 75%를 달성했다. 

PR 라이언즈 그랑프리를 포함해 8개의 사자 트로피를 수상한 킷캣(KitKat)의 'The KitKat Heist' 캠페인도 사람들이 몰입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초콜릿 판매 최대 성수기인 부활절을 앞두고 12톤(총 41만3793개)의 킷캣을 도난 당한 후, 오히려 이 사건을 사람들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색다른 이벤트로 탈바꿈시켰다. 'The Stolen KitKat Tracker'라는 채널을 만들고, 소비자들이 구매한 킷캣의 배치(batch) 코드를 조회해 해당 제품이 도난품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비자들을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킷캣 도난 사건에 빠져들었고, 그 결과 200만 건이 넘는 참여를 이끌어냈다. 광고비 집행은 0원이었지만 언드 미디어 가치는 2억2400만 달러, 전체 영상 조회수는 1억5000만 회를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AI라는 요술방망이가 프롬프트만으로 손 쉽게 결과물을 가져다주신 시대, 집요한 장인정신과 인간적인 헌신이 집약된 크래프트맨십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해내며 칸을 뜨겁게 달궜다.

디자인(Design) 라이언즈 그랑프리를 수상한 애플의 'Apple TV Rebrand' 캠페인은 디지털 효과 대신 실제 유리 조형물과 빛, 사운드를 활용한 브랜드 시그니처를 중심으로, 크래프트를 강조한 새로운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없이 실제 빛과 재질만을 활용해 100% 카메라 실사로 촬영한 유리 조각 로고, 빛이 유리를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반사와 색상 변화를 통해 흰색 빛이 지닌 모든 스펙트럼의 색상을 담아냈다. 

인더스트리 크래프트(Industry Craft) 라이언즈 그랑프리 수상작인 드롱기(DE'LONGHI)의 타이니 커피숍(TINY COFFEE SHOPS)은 집에서도 완벽한 커피를 즐길 수 있음을 압도적인 시각적 디테일로 증명해냈다. 세계적인 미니어처 아티스트 시몬 바이스(Simon Weisse)와 협력해 브랜드의 상징적인 커피 머신 5대를 완전히 기능하는 초소형 미니어처 카페로 재탄생시켰다. 8명의 아티스트가 8개월 동안 300개가 넘는 부품을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손으로 직접 칠한 벽돌, 맞춤형 가구, 눈에 띄지 않는 천장의 작은 고양이 장식, 전원 버튼을 가린 굴뚝 등 세밀한 아트 디렉션이 좁은 공간 안에 엄청난 깊이와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AI가 칸라이언즈 행사 전체의 화두를 장악한 것은 분명했지만 어디까지나 AI는 하나의 도구였을 뿐, 황금빛 사자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진짜 승자는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이었다.

△ 독립 광고대행사가 만들어 낸 이변과 젊은 광고인들의 약진

2026 칸라이언즈 디자인 라이언즈 브론즈를 수상한 파울러스.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2026 칸라이언즈 디자인 라이언즈 브론즈를 수상한 파울러스.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칸라이언즈에 따르면 올해 브랜드가 직접 출품한 작품은 전체 출품작의 10%로 지난해의 8%에서 증가했다. 또한 독립 에이전시가 제출한 작품은 전체 출품작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대형 네트워크 에이전시에 몰려 있던 칸라이언즈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브랜드와 독립 에이전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변화가 놀랍다. 그간 제일기획과 이노션, 외국 계열 대행사가 대부분 칸라이언즈 수상과 세미나, 심사위원 배출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제일기획과 이노션의 수상이 불발된 가운데, 직원 수 10명 남짓한 디마이너스원이 실버 2개, 직원 수 20명 가량의 파울러스가 브론즈 1개를 수상하며 대한민국 독립 대행사의 저력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올해 대한민국 유일의 세미나 무대에도 파울러스와 스튜디오좋이 나란히 올랐고, 심사위원 명단에도 파울러스 김경신 대표(디자인 라이언즈)와 크랙더넛츠 송창렬 대표(PR 라이언즈 예심)가 포함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는 "대한민국 독립 대행사들의 활약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비티에 대한 사회적 니즈, 이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기존의 '수직계열화된 산업으로써의 광고'가 아닌 '창의로서의 광고'로의 이행, 그 시대적 요청을 알리는 중요한 상징적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몇몇 대기업 인하우스(in-house) 대행사가 이끌어 오던 한국의 광고 산업이, 이제는 글로벌 시장이 원하는 크리에이티비티 중심의 산업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냉철한 사실을 올해 칸라이언즈에서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다. 

2026 영라이언즈 컴피티션 미디어 부문 골드를 수상한 제일기획 구본경(좌), 장예린(우) 팀.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2026 영라이언즈 컴피티션 미디어 부문 골드를 수상한 제일기획 구본경(좌), 장예린(우) 팀.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젊은 광고인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전 세계 만 30세 이하의 주니어 크리에이터들이 경쟁을 펼치는 영라이언즈 컴피티션(이하 YLC)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한 제일기획의 구본경·장예린 팀이 미디어(Media) 부문 최고상인 골드를 수상했고, 스튜디오좋의 김수민·송민우 팀이 디자인(Design) 부문 브론즈를 수상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2008년 최초로 YLC 수상팀을 배출한 이후 2010년, 2019년 각각 수상했다. 이후 2023년부터는 연속 4년째 수상 행진을 이어가며 주니어들의 탄탄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 세계 31명을 선정하는 로저 해추얼 학생 아카데미(Roger Hatchuel Student Academy, RHSA)에 올해 한양대학교 안수빈 학생(광고홍보학과)이 선정되며 한국은 10년 만에 RHSA 장학생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 칸라이언즈, '영감의 샘'에서 '네트워킹의 최선전'으로

2026 칸라이언즈.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2026 칸라이언즈. ⓒ프랑스 칸=서성진 기자

과거 칸라이언즈는 '크리에이티비티 샤워'를 하는 곳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글로벌 크리에이티비티의 최전선에서 크리에이티브들이 무한대의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고, 더 좋은 크리에이티비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동기부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는 의미였다. 때문에 매년 많은 광고인들이 상을 받기 위해, 또는 상을 받은 작품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자극을 받기 위해 칸라이언즈를 찾았다.

그러나 이제 칸라이언즈는 더 이상 단순히 상을 받거나 영감을 받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때문에 과거의 칸라이언즈를 생각하고 방문한 사람들은 예전만큼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충분치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주요 광고대행사들이 차지했던 칸 해변가의 비치(beach) 부스들은 구글, 유튜브, 메타, 틱톡, 스포티파이, 어도비, 캔바, 아마존, 핀터레스트, 레딧과 같은 거대 IT 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의 부스로 대체됐고, 각종 세미나와 컨퍼런스, 어워드 쇼 중심이었던 칸라이언즈 페스티벌은 이제 비즈니스 미팅과 네트워킹이 핵심이 됐다. 행사장 밖에서도 각종 브랜드와 에이전시, 프로덕션들이 BBQ 파티와 칵테일 파티 등 크고 작은 프라이빗 모임을 열고 치열한 비즈니스 작전을 펼치고 있다. 

칸라이언즈를 약 서른번 가량 방문했다는 광고계의 거물 마틴 소렐 경(Sir Martin Sorrell)은 "단 하루 동안만 해도 칸에서 메타,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을 끊임없이 만났다. 내가 수십년째 칸에 빠지지 않고 오는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최신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서다. 글로벌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고 싶다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이 교류하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AI 기술의 발전 등으로 광고와 크리에이티비티의 영역이 확장되고 다변화하면서 업계는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 협력과 파트너십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이제는 '광고'만으로는 '광고'하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 칸라이언즈 또한 오직 '광고'만으로는 상을 받기 어려워진 무대가 됐다. 참관 비용만 수천만원이 드는 칸라이언즈에서 진정으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영감'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네트워킹의 최전선인 칸라이언즈에 뛰어 들어 진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김수경 기자muse@newdaily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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