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칸 라이언즈 소식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비티 축제인 칸 라이언즈(The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의 디지털 축제 '칸 라이언즈 라이브(Cannes Lions Live)'가 열린 22일(현지시간) 밋업(Meet Up) 세션의 가상 무대에 인도의 광고 거장 조시 폴(Josy Paul)이 올라 이같이 말했다.
조시는 인도 DDBO의 회장 겸 CCO(Chief Creative Officer)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두 이야기가 일목 상통하는 것은 자신 혹은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깊이 있는 스토리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감정 데이터라는 크리에이티비비티(Creativity is Emotional Data)'라는 제목의 이 세미나에서는 조시가 10분 강연 한 후 질의응답을 받았다. 온라인 집단 화상 대화의 형태로 진행됐고 조시의 대답에 박수, 이모티콘 등을 통한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인사이트가 아니라 고백이 필요하다."
조시는 감정 데이터에 주목하게 된 맥락을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간적 반응이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서 모든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때이다. 무엇을 믿어야 할 지 모르는 이 때, 사람들은 불안감에 떨며, 낯선 사람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때 감정 데이터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 자신의 심해(ocean flow of myself)로 들어가 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실만이 존재하는 심해로 들어가 브랜드의 의미를 찾고 사람들이 서로 서로, 그리고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시는 '인사이트(insight)'라는 마케팅 용어로 감정 데이터를 설명하는 것은 제한적이라고 부연했다. '심해(ocean flow)'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진실은 표면에 있지 않고 숨겨져 있기 때문에 이를 끄집어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인사이트 대신 '고백(confession)'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또한 대화와 공감에 근거한 크리에이티비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 우리 사회에서 불편하게 느끼지만 아무도 하지 않아 왔고, 아무도 듣지 않아 왔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개인적 경험
그의 이런 생각은 몇 년 전 전자상거래 브랜드인 이베이와 일하면서 시작됐다. 클라이언트가 "전자상거래의 목적(pupose)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느냐?"는 광범위한 질문을 던졌다. 이후 "사람들은 왜 구매를 할까?"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상적인 수준의 답을 하다 지속적으로 질문하다 보니 점점 깊은 답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여자가 대답했다. "늘 손자를 원했던 할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때 너무 낙심했다. 손자보다 내가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구매를 한다"고 고백하면서 그녀는 무너져 내렸고 이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도 깊이 공감했다.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방식의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를 보여준다. 위계 질서를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하고 공감하다 보면 아름다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성별, 연령, 종교 등으로 판단하지 말고(Don’t Judge) 민감하게 들어주어야 한다. 이 과정은 소비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과 관련된다. 광고가 아니라 치료(therapy)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성공적인 사례로 지난 2015년 칸 라이언즈에서 글래스 부분 그랑프리를 받은 '터치 더 피클(Touch the Pickle)' 캠페인을 들었다. P&G에서 생리대 브랜드인 위스퍼(Whisper)에 대한 소셜 미디어 캠페인을 요청했다.
인도에서는 '생리 중인 여성이 피클병을 만지면 피클이 상한다'는 미신이 있다. 그간 금기로 여겨지던 미신에 도전하기로 했고 '피클병을 만져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캠페인은 제품 판매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행동을 독려해 사회변화에 기여했다는 차원에서도 획기적인 결과를 얻었다.
조시는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강조하며 또 다른 예로 2016년 5개 부문을 수상한 P&G 세제 브랜드 '아리엘(Ariel)' 캠페인을 들었다. 아리엘의 '#쉐어더로드(#Sare The Load)' 캠페인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사 분담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집안 일을 하지 않는 아버지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고 광고 속 영상의 어머니들은 "빨래는 여자만의 일인가요?"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조시에 따르면, 브레인 스토밍이 아니라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세션을 통해서 이러한 캠페인들이 나왔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confession)하고 치료(therapy)받는 과정들이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냄으로서 브랜드와 사회를 모두 진전시킬 수 있었다.
음료 브랜드인 '미린다(Mirinda)'의 '릴리즈 더 프레셔(ReleaseThePressure)' 캠페인은 인도의 청소년을 위한 것이었다. 인도 청소년은 부모의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이 캠페인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부모에게 솔직한 편지를 쓰도록 했다. 이 편지를 부모에게 전달하기 위해 제품 용기에 부착했다.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 부모들에게 압박을 멈추라고 촉구할 수 있었다.
조시 폴은 "가정에서의 불평등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며 "왜 아버지는 저렇게 행동하는가부터 왜 아들과 딸을 다르게 가르치는가 등에 대해 이야기 하라. 이야기하고 공유하게 하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과 공감할 수 있는 관계들
이어진 질의 응답에서 조시는 공감할 수 있는 관계들(empathy circle)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커뮤니티를 통해 일의 의미를 찾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모임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결과 우리의 일과 사업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며 "우리의 일은 과시(show off)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공유하라"고 조언했다.
마지막 질문에서 한 참관단은 조시에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감정(biggest emotion)'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조시는 근심(sense of anxiety), 상실감(loss of something), 외로움 등이라고 답하며 특히 젊은이들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권경은 객원 기자·국민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