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칸 라이언즈 소식
최대 화두는 AI, '명'과 '암' 극명… 칸라이언즈, AI 윤리 강화
이노션 '밤낚시', 韓 세번째 그랑프리… K크리에이티비티,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
크리에이터·유머, 올해도 핵심 키워드로 주목

지구상에서 가장 냉정하고 생생한 '크리에이티브의 척도'로 불리는 칸라이언즈(Cannes Lions)는 지금 이 순간 글로벌에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와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만을 가려내 묵직한 사자 트로피를 품에 안긴다. 올해 칸라이언즈에 출품된 2만6900편의 작품 중 칸의 사자를 품은 작품은 전체의 3.08%(828편) 뿐이다.
AI(인공지능)가 아이디어를 무한 생성하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마음을 이끄는 시대. 그 안에서 살아남은 3.08%의 시대정신은 크리에이티비티의 현주소와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어워즈 경쟁을 넘어,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서에 가깝다.
브랜드브리프는 2025 칸라이언즈에서 목격한 '살아 움직이는 사자'가 남긴 날카로운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 AI는 '파괴자'인가 '구원자'인가
올해 칸라이언즈에서는 AI 조작 논란에 휩싸인 캠페인이 그랑프리(Grand Prix) 수상을 발탁당하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크리에이티브 데이터 라이언즈(Creative Data Lions)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브라질 가전업체 꼰쑬 어플라이언시스(CONSUL APPLIANCES)의 'Efficient way to pay(효율적인 지불 방식)' 캠페인(DM9 상파울루 대행) 케이스 필름에 AI로 생성 및 조작된 콘텐츠가 포함돼 있었고, 칸라이언즈 측은 철자한 조사 끝에 그랑프리 및 관련 수상 내역을 모두 철회했다.
조사 결과, DM9는 영상 내 일부 장면에서 CNN 브라질의 뉴스 보도를 무단 도용·변형한 AI 조작 영상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보도된 적 없는 내용을 캠페인 반응처럼 연출해, 심사위원단이 심사 당시 사실과 다른 정보를 근거로 판단하게 만든 것이다.
이번 조작 논란의 여파로 이카로 도리아(Icaro Doria) DM9 공동대표 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 CCO)가 사임했고, 칸라이언즈는 생성형 AI 시대에 발맞춰 강화된 AI 윤리 조치를 도입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올해로 72회를 맞은 칸라이언즈에 AI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휘몰고 온 것이다. AI가 크리에이티비티를 더욱 효과적으로 완성시켜주는 협업의 주체로 확고히 자리 잡은만큼, 그 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 또한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반면, '슬기로운 AI 활용법'을 보여주며 전례없는 브랜드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의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의 '리들라이즈(Lidlize)' 캠페인(마르셀 파리(MARCEL, Paris) 대행)은 자체적인 브랜드 상품을 출시하는 대신, 일반 대중에게 크리에이티브의 통제권을 넘겼다.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훈련된 맞춤형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해 사용자들이 원하는 어떤 물건도 '리들' 제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72시간 동안 200만 개의 '리들'화된 제품이 인터넷에 등장했고, 트래픽 급증으로 인해 캠페인 사이트가 두 번이나 다운됐다. 무엇보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리들'의 브랜드 자산을 가지고 노는 데 열광했다. '리들'은 생성형 AI를 영리하게 사용해 브랜드 로열티를 강화하고, 소비자들의 대규모 참여를 이끌어냈으며 크리에이티비티와 AI가 만날 때 어떤 폭발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 캠페인은 다이렉트 라이언즈(Direct Lions) 골드를 포함해 4개의 사자 트로피를 획득했다.

페스티벌에서도 AI의 활약은 놀라웠다.
칸라이언즈는 올해 '라이브 캡션 앳 칸라이언즈(Live Captions at Cannes Lions)' 서비스를 도입해 각 세션의 연사가 발표하는 내용을 실시간 영문 텍스트로 제공했다. 칸라이언즈의 모든 세션은 영어와 영어 수화로만 진행되는 만큼,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참가자들은 언어 장벽으로 인한 어려움을 늘 겪어왔다. 올해 '라이브 캡션' 도입으로, 전 세계 칸라이언즈 참가자들은 해당 텍스트를 다양한 AI 애플리케이션으로 실시간 번역하고 핵심 내용을 정리해 보는 등 정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AI가 칸라이언즈의 최신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널리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활짝 열어 준 것이다.
AI 기술의 숙련도나 전문성보다 중요한 것은, AI 활용의 최종 결정권이 인간의 전략적 통찰과 윤리적 리더십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목적과 가치에 맞게 AI 기술을 제어하고 영리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칸라이언즈에서는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 '오징어게임'만 있냐? '밤낚시'도 있다!

올해 칸에서는 대한민국 역사상 세번째 그랑프리가 탄생했다. 엔터테인먼트 라이언즈(Entertainment Lions) 그랑프리를 수상한 현대자동차의 '밤낚시(Night Fishing)' 캠페인(이노션 대행)이 그 주인공이다. 전 세계가 '오징어게임(Squid Game)'에 열광했듯, 칸라이언즈에선 모두가 '밤낚시'에 매료됐다.
엔터테인먼트 라이언즈 심사위원장을 맡은 데이비드 롤프(David Rolfe) WPP / 호가스(WPP / Hogarth) 글로벌 제작 책임자는 "심사위원들과 함께 밤낚시 영상을 끝까지 다보기도 전에 '바로 이거야!'하고 그랑프리를 확정했다"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교하게 녹여낸 동시에, 탁월한 내러티브와 독창적인 제작 기법으로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극찬했다.
또 주목할 점은 한국의 칸라이언즈 그랑프리 수상 주기가 눈에 띄게 단축됐다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그랑프리인 2011년 홈플러스의 '가상 스토어' 캠페인(미디어 라이언즈, 제일기획 대행) 이후 12년 만인 2023년 경찰청의 '똑똑(Knock Knock)' 캠페인(글래스 라이언즈, 제일기획 대행)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리고 불과 2년 후인 올해, '밤낚시'가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는 K-크리에이티비티가 더 이상 '신선한 변수'가 아닌, 전략과 완성도를 갖춘 '핵심 플레이어'로 글로벌에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노션은 현대차의 인하우스 에이전시라는 태생적 한계를 넘어, 글로벌 에이전시로서의 위상과 가치를 창립 20년 만에 세계 무대에서 입증했다.

칸라이언즈 페스티벌이 펼쳐지던 5일 내내 한국 크리에이터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첫째날인 16일에는 강지현 서비스플랜코리아 대표, 17일에는 헬스&웰니스 라이언즈(Health & Wellness Lions) 심사위원을 맡은 박유진 CJ제일제당 IMX(통합 마케팅 경험) 크리에이티브·디자인 글로벌 마케팅 리드, 18일에는 그랑프리의 주역인 김정아 이노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 CCO) 겸 부사장과 지성원 현대차 글로벌 최고 마케팅 책임자(Chief Marketing Officer, CMO) 겸 브랜드마케팅본부장(전무), 19일에는 이윤헌 펩시코리아 CEO(Chief Executive Officer, CEO)와 서현주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부사장 겸 총괄 제작자, 마가렛 키(Margaret Key) MSL APAC 대표,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파울러스(Paulus)의 김홍탁 CCO와 김경신 CEO가 각각 연사로 무대에 올랐다.
K-크리에이티비티와 K-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한 듯, 칸라이언즈 조직위원회가 이례적으로 한국인 연사의 무대를 행사 기간 내내 전략적으로 배치한 점이 눈에 띈다.


전 세계 만 30세 이하의 주니어 크리에이터들이 경쟁을 펼치는 영라이언즈 컴피티션(이하 YLC)에서는 한국 대표로 출전한 제일기획의 박선미 카피라이터·오수빈 아트디렉터 팀이 디지털(Digital) 부문 최고상인 골드를 수상했으며, 5명의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이 AQKA가 주관하는 칸라이언즈의 대학생 공모전 퓨처라이언즈(Future Lions)에서 수상하는 등 주니어와 꿈나무들의 성과도 돋보였다. 또한 칸라이언즈코리아가 주최하는 대학생 공모전 '2025 드림라이언즈' 우승팀인 성신여대 학생들과 전공 심화 현장 체험 학습에 선정된 대구가톨릭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학생들도 칸라이언즈를 방문해 현지의 생생한 인사이트를 아로새기며 다음에는 수상자로, 심사위원으로, 연사로 다시 꼭 칸을 방문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약 1만3000명이 방문한 2025 칸라이언즈 행사 기간 동안, '제일멋짐'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새겨진 공식 에코백이 칸 시내를 물들였다. 제일기획이 디자인한 해당 에코백은 칸라이언즈 역사상 최초의 '한글 에디션'으로 주목 받았으며, 전 세계 참가자들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인인 한글을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글 고유의 조형미와 트렌디한 문구가 결합된 이 에코백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한국 크리에이티브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드러내는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 '도파민' 터지는 '쇼츠' 속 '장수 캠페인'이 증명해 낸 가치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쇼츠'의 시대, 소위 '도파민 터지는' 찰나의 즐거움과 즉각적인 반응이 지배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장수 캠페인'들의 가치가 올해 칸라이언즈에서 다시 한 번 빛났다.
21년 동안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을 지속해오고 있는 도브(Dove)는 올해 'Real Beauty: How a soap brand created a global self-esteem movement' 캠페인(오길비 런던(Ogilvy UK, London) 대행)으로 크리에이티브 전략 라이언즈(Creative Strategy Lions), 글래스 라이언(Glass: The Lion for Change) 2개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순간의 유행을 넘어선 장기적인 브랜드 구축과 진정성, 변치 않는 브랜드 비전이 어떻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줬다. 지난 20여년 동안 도브의 '리얼 뷰티' 플랫폼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에게 도달했고, 280억 달러(한화 약 38조3628억원) 이상의 추가 수익을 창출했다.
2015년 시작된 애플(Apple)의 '샷 온 아이폰(Shot on iPhone)' 캠페인(TBWA\Media Arts Lab(TBWA\MAL, 미디어아츠랩) 대행)도 크리에이티브 효과 라이언즈(Creative Effectiveness Lions)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장수 캠페인'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동시에 확인시켰다. '샷 온 아이폰'은 연 2회 정기 진행되는 옥외 광고 캠페인으로 확장됐고, 전 세계 주요 프리미엄 광고 지면에 10년째 집행되고 있다. 2015년 캠페인 시작 당시, 미국 10대의 약 66%가 아아폰을 사용했으나, 2025년에는 88% 이상이 아이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샷 온 아이폰'은 애플 역사상 가장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아이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캠페인은 '쇼츠'라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 형태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지속 가능한 브랜드 가치'의 본질을 탁월하게 증명해냈다. 이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철학적 일관성과 정체성의 힘이 얼마나 오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 '크리에이터'를 통해 브랜드와 문화를 연결하라

올해 칸라이언즈에서 '브랜드와 문화의 연결'은 핵심 주제 중 하나였다. 글로벌 시장 조사 및 데이터 분석 회사 칸타(Kantar)의 데이터에 따르면, 문화적으로 활력 있는 브랜드는 그렇지 않은 브랜드보다 6배 더 빠르게 성장한다. 관건은 문화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자리를 잡는 것이다.
브랜드가 특정 문화 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통로는 바로 크리에이터다. 크리에이터는 문화적 '원주민'으로, 대중과 진정성 있게 연결되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서치 네스터(Research Nester)에 따르면 크리에이터 경제의 시장 규모는 2036년 말까지 6000억 달러(한화 약 822조원)를 넘어 설 것으로 전망된다. 칸타의 '컨텍스트 랩(Context Lab)' 자료에 따르면 현재 브랜드와 명확하게 연계된 크리에이터 콘텐츠는 전체의 27%에 불과하지만, 크리에이터가 한 번 브랜드와 연결되면 브랜드 자산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훨씬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케터들은 여전히 이 생태계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크리에이터들이 단순한 콘텐츠 생산자를 넘어 브랜드와 문화를 연결하는 핵심 축으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칸라이언즈도 이에 발맞춰 기존 소셜&인플루언서 라이언즈(Social & Influencer Lions) 명칭을 올해부터 소셜&크리에이터 라이언즈(Social & Creator Lions)로 변경하고, 메인 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 건물 옥상에 크리에이터스 루프톱(Creators Rooftop)을 운영하는 등 크리에이터들이 업계 리더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크리에이터들이 성큼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최전선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다.
올해 소셜&크리에이터 라이언즈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세린(Vaseline)의 'Vaseline Verified(바세린이 확인했음)' 캠페인(오길비 싱가포르(Ogilvy Singapore) 대행)은 크리에이터가 브랜드와 문화를 연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150년 역사를 지닌 피부 보호제 바세린은 소셜 미디어에서 다용한 바세린 활용법을 담은 '바세린 꿀팁(vaseline hacks)'이 바이럴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나 일부 활용법은 안전하지 않거나 심지어 위험한 내용도 있었다. 이에 바세린은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사용 팁 중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기로 했다.
바세린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테스트하는 과정을 촬영하고, 그 결과를 크리에이터들에게 맞춤형 영상으로 전달해 그들이 자신의 플랫폼에서 이를 확산시키도록 했다. 450명 이상의 크리에이터와 협력했고 그 결과, 'Vaseline Verified' 캠페인은 브랜드 소셜 미디어 역대 최고 기록인 6330만 회 이상의 인터랙션(interaction)을 달성했으며 한 달간 매출 13.9% 증가, 전자상거래 채널 내 매출은 43% 증가하는 등 비즈니스의 성장까지 이끌었다.
바세린은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을 통해 단순히 제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생성하는 문화적 흐름에 깊숙이 개입해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이고 참여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크리에이터가 단순한 광고 채널이 아니라, 브랜드가 소비자와 소통하고 신뢰를 구축하며, 나아가 문화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전략적 파트너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글로벌 레퍼런스'가 됐다.
△ 사람을 웃게 만드는 크리에이티비티의 힘
칸에서는 올해도 유머(humor)의 강세가 계속됐다. 진지하고 심오한 광고나 슬픔 또는 감동을 주는 캠페인보다는, 사람들을 웃음짓게 만든 크리에이티비티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랑프리 포 굿(Grand Prix for Good)과 라이언즈 헬스 그랑프리 포 굿(Lions Health Grand Prix for Good) 두 개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뉴질랜드 헤르페스 재단(New Zealand Herpes Foundation)의 'The Best Place in The World to Have Herpes(헤르페스를 앓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캠페인(핀치 시드니(Finch, Sydney) 대행)은 헤르페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유머와 연결시켜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 낸 대표적 사례다.
이 캠페인은 뉴질랜드인의 '무엇이든 1등이 되고 싶어 하는' 국민적 자부심을 활용해, 헤르페스 낙인 제거를 국가적 목표이자 명예 회복의 수단으로 제시했다. '헤르페스를 앓기에 세계 최고인 나라, 뉴질랜드를 만들자'는 도발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메시지를 통해 사회적 금기를 깨고 열린 대화를 유도했다.
티타늄 라이언즈(Titanium Lions)를 수상한 페디그리(Pedigree)의 '페디그리 카라멜로(Pedigree Caramelo)' 캠페인(알마BBDO 상파울루(ALMAPBBDO Sao Paulo) 대행)은 브라질의 대표 잡종견인 '카라멜로'가 외면받는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타파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순종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잡종견도 소중한 존재임을 알리기 위해, 단순한 유기견 입양 캠페인을 넘어 '카라멜로'를 하나의 품종으로 인정하는 획기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페디그리는 '카라멜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혈통서를 발급하고, 전문 견종 클럽을 설립했으며 도그쇼까지 개최하는 등 '카라멜로'를 정식 품종으로 승격시켰다. 캠페인 첫 달에 '카라멜로' 입양이 218% 증가했고, 입양 과정에서 잡종견 고려율 또한 61% 증가했다. '카라멜로 견종 클럽'은 라틴 아메리카 최대 규모(회원 3000명 이상)가 됐고, 캠페인을 론칭한 달의 월 매출도 23.2% 증가했다. 페디그리는 이 성공 모델을 전 세계 80개국 이상의 시장에서 현지 특성을 반영해 적용할 계획이다.
잡종견에 대한 외면을 '불쌍함'이나 '슬픔'과 같은 감성 호소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문화적 자부심과 사회적 인식 전환의 문제로 재정의한 이 캠페인은 20년 이상 유기견 입양 문제에 앞장서 온 페디그리의 브랜드 미션을 크리에이티브하면서도 재밌게 실현한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헬스&웰니스 라이언즈(Health & Wellness Lions) 심사위원을 맡은 박유진 CJ제일제당 IMX(통합 마케팅 경험) 크리에이티브·디자인 글로벌 마케팅 리드는 브랜드브리프와의 인터뷰에서 "다소 무거운 이슈를 다루는 캠페인에서도 슬픔을 강조하기보다 기쁨, 희망, 웃음이 메시지의 중심에 배치된 사례들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들을 불러왔다"며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통보다는 기쁨에 끌리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크리에이티브가 결국은 정답"이라고 말했다.
애플(Apple)의 토르 마이런(Tor Myhren)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부사장 또한 기조 연설 무대에서 "마케팅은 단순히 이해를 돕는 것을 넘어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며 "사람들이 브랜드와 사랑에 빠지는 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 덕분이다. AI와 알고리즘이 술집에서 만나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웃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인간만이 공감하고, 슬퍼하고, 함께 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감정 깊은 곳을 헤아려 웃음을 이끌어내는 크리에이티비티는 AI 기술의 현란함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올해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 액티베이션 라이언즈(Brand Experience & Activation Lions) 심사위원을 맡은 양수희 퍼블리시스그룹 코리아 CCO는 "예전에는 '좋은 크리에이티브는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번 칸라이언즈 심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칸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크리에이티브뿐만 아니라 전략, 인사이트, 목적, 결과 등 모든 부문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넘어서는 뛰어남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라 말했다.
칸라이언즈는 단순히 크리에이티브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고 상을 받을 수 있는 광고제가 아니다. 사업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이뤘거나, 중요한 사회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당 캠페인을 기획하게 된 사회적·문화적 배경에서부터 시작해 브랜드가 정의한 문제와 목적, 아이디어, 전략, 절차, 실행, 최종 결과는 물론, 올바른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작품만이 마침내 칸의 사자를 품을 수 있다. 그 과정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사자의 등에 올라타는 것만큼이나 까다롭고 험난해 때로는 '난공불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브랜드와 광고인, 마케터들이 해마다 이 값비싸고 고된 여정을 자처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칸라이언즈는 단지 '상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브랜드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근본부터 되묻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 도전의 과정에서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더 깊은 통찰을 발견하며,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김수경 기자muse@newdaily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