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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인간 크리에이티비티를 대체할까

2017-01-09 18:01:08
자주 망각하긴 하지만, 우리 인간도 동물이다. 레이더와 초음파측정기와 같은 최첨단장비로 아무리 우리의 시야를 넓힌다 하더라도 그 정보를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곳은 우리의 머릿속이며, 온갖 이성적 판단을 주관하는 대뇌피질 안 깊은 곳엔 아직도 5억 년 전 형성 당시 모습을 지닌 ‘파충류의 뇌(뇌간)’가 자리를 잡고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집요하게 방해하면서 본능을 따르도록 유도한다. 뇌간은 호흡, 수면, 호르몬 등을 조절해 궁극적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루이지 갈바니가 신경이 일종의 전기신호로 작동한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과거 고귀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여겼던 우리의 뇌신경작용은 자연현상의 하나로 ‘격하’됐다. 이후 신경현상에 대한 정보가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현대 신경과학이 탄생했다. 현재 신경과학은 16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이미 막대한 관측자료를 통해 행성운동의 법칙 3가지를 찾아내던 단계와 유사해 보인다. 케플러 사후에 태어난 아이작 뉴튼이 행성운동의 근본적 원리를 찾아낸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뇌가 작용하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파악하게 될지도 모른다. 

‘응용신경과학’이라 볼 수 있는 뉴로마케팅은 때론 극히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의사결정과정을 신경과학을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펩시콜라가 70년대부터 ‘펩시 챌린지’를 통해 ‘맛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있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펩시의 매출이 코카콜라를 앞섰다지만, 게토레이 등 비탄산부문의 선전 덕분이지 펩시콜라 자체의 매출은 여전히 코카콜라보다 못하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펩시콜라에서는 더 맛있다고 인정해주면서도 코카콜라 브랜드를 선호하는 ‘비이성적인’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으려 다방면으로 애썼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현대 뉴로마케팅의 시초로 삼는다. 

뉴로마케팅에서는 상품의 패키지나 광고문안 등이 인간 본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연구한다. 과거에는 이런 시도 상당부분이 추정 혹은 추측에 의해 이뤄졌다. 로고가 크면 잘 볼 것이다, 미인이나 아기, 동물이 나오면 주목 받을 것이다, 적절한 색깔을 이용해 보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식이었다. 과거 마케팅은 부족한 통계자료와 제작자의 크리에이티비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크리에이티비티는, 경험과 본능에 따라 도마뱀의 눈알과 개구리 발가락 등을 넣긴 하지만 도대체 왜 넣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마녀의 약’ 같은 것이었다. 

2010년 칸 라이언즈 옥외부문 수상작 '그이가 운전할 땐 통화하지 마세요' 시리즈 중 한 편. 운전중 통화의 위험성을 이성적으로 알리는 대신 충격적인 시각효과로 감정과 본능에 호소한다. ⓒ칸라이언즈한국사무국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는 어떤 감각적 요소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원하는 반응을 유도하는지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마저 구매하게 만드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됐다. 

아직까지 뉴로마케팅을 제대로 집행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뉴로마케팅을 위해 사용되는 안면인식, 안구추적, 음성분석, 거짓말탐지 등 기술은 현재 많이 상용화됐다지만, 뇌파측정, MRI와 같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술은 여전히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술발전과 정보축적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방대한 연구조사 없이 뉴로마케팅을 실행하게 해줄 ‘매뉴얼’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앞으로 멋진 크리에이티비티를 만들어내는데 인간이 필요 없게 될까? 방대한 신경과학 자료를 보유한 인공지능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패러디 될 멋진 광고문안과 그래픽을 만들어낼까? 인간은 그저 컴퓨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시하는 잡일만 하는 신세, 인공지능 마케터가 의도한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로 전락하게 될까? 전세계 많은 광고대행사들이 이를 우려하고 그렇게 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 뇌의 시냅스 수는 10의 1,000,000 승 개이며, 이를 조합하면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슈퍼컴퓨터를 작동해도 풀어낼 수 없는 경우의 수라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도 한 동안은 도마뱀의 눈알과 개구리 발가락과도 같은 인간의 크리에이티비티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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